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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배명복 칼럼] 자카르타의 커피 볶는 한인 변호사

by 202020 2017.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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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2015.03.17 00:03 수정 2015.03.17 00:03 | 종합 31면 지면보기 PDF인쇄기사 보관함(스크랩)글자 작게글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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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지난달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유별난’ 한국인-정확히는 한국계 인도네시아인-을 인터뷰했다. 이소왕(49)씨다. 직업은 변호사 겸 컨설팅 회사 대표. 인도네시아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원하는 외국 기업을 상대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고층빌딩에 회사 사무실이 있다. 직원은 약 30명.


 일과 별도로, 그의 취미는 커피에 관한 모든 것이다. 입수 가능한 커피 관련 서적을 모두 섭렵하고, 필요한 기술도 다 익혔다. 취미가 지금은 부업이 됐다. 그가 운영하는 커피 전문점은 인도네시아 영화나 TV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자카르타의 명소가 됐다. 가게에 들어서니 독일에서 수입했다는 로스팅 기계가 눈길을 끈다. 커피 원두를 볶는 기계다. 점포 설계와 인테리어도 예사롭지 않다. 이곳에선 인도네시아 특산품인 루악 커피부터 그가 직접 블렌딩한 브랜드 커피까지 다양한 커피를 맛볼 수 있다.


 한국에서 그의 학력은 고졸이다. 부친의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군에 입대했다. 제대할 무렵, 그는 인도네시아의 잠재력에 눈을 떴고, 바로 자카르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원과 노동력이 풍부한 동남아의 대국 인도네시아가 유망한 투자대상국으로 떠오르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악착같이 현지인들에게 달라붙어 몇 달 만에 ‘생존 인도네시아어’를 마스터했다. 그러고는 현지 대학에 들어갔다. 학비는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수시로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며 현지인들과의 인맥도 넓혔다. 졸업과 동시에 한국 기업들의 러브콜이 쏟아졌지만 사양하고 자영업을 택했다. 현지 진출을 원하는 한국 기업들에 시장조사를 대행해 주는 비즈니스였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회사가 커지자 마흔두 살의 나이에 현지 법대에 진학해 변호사 자격까지 땄다.


 그의 사전에는 ‘노(No)’가 없다. 고객의 어떤 요구나 주문에도 불법이 아닌 한 “일단 해보겠다”고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그는 사업이 일정 궤도에 오를 때까지 일절 선수금이란 걸 받지 않았다. 고객이 결과에 100% 만족할 때만 돈을 받는 걸 원칙으로 했다. 낯선 땅에서 그는 정직과 신용, 근면으로 당당히 일어섰다.


 외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한국인들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전혀 상상도 못했던 곳에서 소리소문 없이 중책을 맡아 훌륭하게 제 몫을 해내는 의지의 한국인들 말이다. 칠레에서 프랑스어로 시를 쓰며 현지 대학에서 스페인 문학을 강의하는 한국인이 있는가 하면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인술(仁術)을 베푸는 한국인도 있다. 전 세계 176개국에 퍼져 있는 700만 ‘코리안 디아스포라’ 가운데 남 모르게 활약하는 한국인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대학을 나와도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취업난은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로봇과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으로 일자리 자체가 급속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만 명이 하던 일을 로봇이 대신하면서 일자리가 100개로 줄어든 중국 공장의 사연이 남의 얘기가 아니다. 그나마 남아 있던 피자 배달원이나 택배기사 일자리마저 드론(소형무인기)이 확산되면서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다.


 육체노동은 물론이고 웬만한 정신노동까지 기계가 빠른 속도로 대체해 나가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그 속도가 빠르다. 그래도 개도국에는 아직 여지가 있다. 하늘에서 감 떨어지듯 일자리를 기다릴 게 아니라 기회를 찾아 과감히 개도국으로 가는 것이 대안일 수 있다. 더 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26년 전 이 변호사가 자카르타를 택한 것은 선견지명(先見之明)이었다. 그는 지금도 그곳에 첫발을 내디뎠던 스물세 살 청년의 마음 그대로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이 변호사의 피부는 청년의 피부처럼 맑고 깨끗하다. 그는 지금도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모든 고객의 상담 요청에 최대한 성심껏 응한다. 상담료는 받지 않는다. 무료상담은 변호사의 의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인도네시아는 아직 성공할 기회가 남아 있는 기회의 땅”이라며 “한국의 젊은이들이 몸으로 부딪히고 도전하면 틀림없이 뭔가 이룰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의 다음 목표는 커피와 카카오 같은 열대 농작물을 기업 단위로 생산하는 플랜테이션 사업이다. 인도네시아 여기저기를 다니며 땅을 보고 있다. 취업이 다가 아니다. 발상을 바꾸면 할 일은 많다. 아직 세계 곳곳에 남아 있는 기회의 땅이 한국의 젊은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출처: 중앙일보] [배명복 칼럼] 자카르타의 커피 볶는 한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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