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가장 현실적이고도 암울하게 중동의 정세를 보여주는 헐리우드 영화
cesar_ 님의 모든 리뷰 보기
최종 수정일:2006.04.03 09:45
리뷰로그 : 블로그 덧글 [0]
관련 영화 : 시리아나
12 | 조회 978
나와 이란의 인연은 5살때부터 시작됐다. 나는 어린 시절, 이란의 테헤란에서 자랐다.
대기업의 중동개발붐이 한창 불던 때였다. 아버지는 기업의 이란 지부장으로 파견됐고,
우리 가족은 모두 그곳에서 몇 여 년간을 살았다.
나는 테헤란의 도심에서도 외국인거주지역에서 살았고, 국제학교를 다니다가 한국인 학교 설립 이후에는
한국인 학교로 편입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장 하나만 넘으면 그곳에는 이란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란인들은 따뜻했으며, 수다스러웠고, 낙천적이며, 온건했다. 나는 만술라네 집에 놀러가 만술라가 쓰는 차도르를
뒤집어 써보고, 메카를 향해 절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양고기를 얻어먹고 자랐다.
나는,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많은 사람들이 중동을 참으로 멀게 느끼는 걸 보고 놀랐다.
이슬람교는 광신도 양성 사이비 종교도 아니며, 그 정신은 여성차별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일까.
영화가 시작되면서, 나는 잠시 그렇게 내가 몸담고 있었던 나라를 다시 만나는 재회의 기쁨을 혼자서 은밀히 누렸다.
<시리아나>는, 그런 이란에 대한 간략하고 불완전한 보고서다.
내가 겪은 이란이란 나라는, 정감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차하고 빈궁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였다.
호메이니를 과격하게 사랑하는 나라였고, 8년전쟁으로 야간점등을 실시하는 불안한 나라이기도 했다.
운전기사가 모는 날렵한 재규어가 도로의 신호를 받아 멈춰있으면, 거지 수십명이 다가와 다닥다닥 달라붙어서
차창을 닦으며 돈을 요구했다. 아버지는 경멸조로 말했다. "이 나라는 기후가 더워서 말야, 국민들이 덥다고 일을 안한다니까.
그러니까 돈을 못벌지."(그러고보니, 멧 데이먼이 영화 중에 그 말을 한다. "이 나라는 일이라고는 안하나봐.
그러니까 흰 옷을 입지." 우리 모두가 중동에게 갖는 대표적인 편견인걸까?)
어린시절, 궁금했다. 왜 이 나라는 언제까지나 근대화가 되지 않는걸까?
자라면서 알게 됐다. 이면에는 여러가지 힘들이 작용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중동과 오십보 백보의 위치에 있음을.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누군가가 이슬람국가들은 왜 저리 멍청하냐고 묻는다면 보여주고 싶은.
기실은, 그닥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저런 컨스피러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산유국 왕가와 미국정부가, 심지어는 빈 라덴과 미국정부조차 친밀한 관계에 있음을 우리는 모두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암살표적으로 나오는 나시르 왕자가 하는 말이라는 것도 중동의 미래를 밝혀줄 새로운 대안은 아니다.
원론적인 말 아닌가. 근로자에 대한 이윤분배,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나라와의 공정한 거래, 농민과 노동자가 유리한
선거법 개정, 문맹퇴치와 여성 참정권 인정, 목초지의 국유화, 회사이윤재분배.....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누구나 생각하는 개혁법이며, 누구나 시도해보려했던 방법들이다. 한 마디로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방법인 것이다.
게다가 그가 말하는 개혁법들조차, 그가 자랑스럽게 말한대로 서방대학에서 가르침을 얻은 대로의 방향 아닌가.
첫째왕자 대신에 제2왕자가 다음 왕으로 결정됐을때, 나는 아연해하는 왕자를 보며 실소했다.
국왕은 분명 첫째 아들이 생각이 깨어있기 때문에 그를 제한게 아니라, 첫째아들이 너무 이상론자이기 때문에 제한것이리라. 물론, 바보 둘째를 앉히면서 미국과 우방이 될 수있고 그게 내 체제에 도움이 된다면 그건 금상첨화이고.
영화평론가들은 나시르 왕자가 홀랑 공중분해되는 장면에서 "이것이야말로 미국에 대한 폭로!"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던데,
글쎄. 나는 비평가도, 국제정세를 잘 아는 정치학도도 아니지만, 거기서 살았던 사람으로서 이건 안다.
그건 아니올시다.
영화에 나온 모든 인물들은 하나같이 출구도 없고, 해답도 없는 암울한 인물들 뿐이었다.
나시르 왕자가 정권을 잡았으면 미국과 중동의 세력구도가 좀 공평해졌을까? 천만에. 나시르 왕자가 하려했던 일들은
1979년 팔레비 왕조가 축출되기전까지 이루려고 했던 개혁법들과 비슷한데가 있다. 나시르 왕자가 가려한 길은,
아마 지난한 내부충돌과 국민분열, 미국의 지속적인 이간질과 공공연한 매수를 겪으며 서서히 자멸해가는 길이다.
나시르 왕자의 부친인 현 국왕이 선택한 길은? 노골적으로 자멸해가는 길이다. 물론, 죽기전까지 국왕의 존엄은
지킬수 있을지도 모르는 길이다. 그러니까 지배층도 뻔히 알면서 그 길을 선택한거지.
나시르 왕자와 멧 데이먼이 연기한 고문은.....뭐랄까. 너무 순진했다. 순진하게 그려져 있다. 나시르 왕자 같은 국왕 말고,
다른 대안은 없는걸까? 결국 현세대에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중동은 부국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건가?
이 영화를 보고, 코묻은 아이돈까지 뺏어가는 동네깡패같은 미국의 행태에 화를 낸다면 그건 너무 일차적인 반응일 뿐이다.
물론...미국은 참으로 큰 죄를 짓고 있다.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그 국가의 정치 수뇌부와 기업들만 가증스러운게 아니다.
멧 데이먼이 연기한 한 개인(미국인)을 보라. 그가 조언한 방법들이란 물론 중동에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방법들이지만,
서구화를 필연적으로 이끌어오는 방법들이기도 하다. 민주화와 서구화라는 포장으로 기실은 미국화를 진행하고 있는
작금의 세태를 봤을 때, 과연 그의 말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었을지 의문이 간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우상이 스러진 순간
총총히 가족에게 돌아가서 아들을 껴안는다. 너는 돌아갈 집이라도 있지, 라는 비아냥이 절로 나온다.
어르고 달래고, 병주고 약주고.
근데 그게 미국만 그런 짓을 하고 있는게 아니거든.
그걸 미국에만 비난을 퍼붓고 만족한다면 진정한 본질을 오히려 흐리는 것이다.
우리 자체부터가 이기심에 기대어 살고 있는데.
국가조차 통제할 수 없는 초국적 기업과 권력층과의 담합, 돈에 의한 신자유주의의 폐해 같은 것이 강대국의 횡포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이 결코 아니거든. 오히려 각 개인들의 이기심이 이런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이기심과 무관심이 초래하는 이런 사태에 대해 명징하게 생각하며 행동하는 사람들이
과연 우리 중에 얼마나 있는가. 우리는 매번 불공정한 사태를 보면서도 미국과 거대기업, 정치인들을 주적삼아
손가락질하며 욕하기만 할 뿐, 그물 같이 연결돼있는 인과관계를 애써 무시하려 든다.
영화는, 바로 그런 우리의 이기심에 대해서도 낱낱이 고발한다. 기업을 다니는 평범한 노동자들, 그들과 같은 회사 아래
있으면서도 얼굴 마주칠 일 없는 화이트칼라들, 공무원들, 기업가들이 각자 잇속 챙기기에만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스타벅스 커피 한잔을 시켜 마실 때, 커피값의 500원이 미국에 송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물론 우리는, 스타벅스가
유대인 자본임을 알고 있다. 우리가 오늘 낮에 마신 한 잔의 커피가 돌고 돌아, 어느 날 팔레스타인 난민 아이의 가슴에
총탄으로 박힐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존경하는 한 스님이 있다.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으며 예일대를 나온 눈푸른 납자이다.
예일대 졸업 후 미국방부 산하 연구소에 근무하다가, 어느날 홀연히 머리를 깎았다.
왜냐고?
어느날,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 여느때와 같이 출근해서 무언가를 용접하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게 핵 잠수함이더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손이 짓고 있는 죄를 그 자리에서 절감하고, 출세가 보장된 직장을 뛰쳐나와 절로 들어갔다.
당신, 그 남자가 순진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신자유주의로 가는 편하고 빤히 보이는 자멸의 길에 걸어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른 누가 끌고 가는 것도 아닌, 우리 스스로의 발걸음으로.
덧) 파키스탄은 펀잡 말을 쓰는데, 영화에 나오는 파키스탄인들은 아랍어를 쓰더군.
아참, 그리고...이란도 아랍어가 아니라 페르시아어를 쓰는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아, 그래도 참 그리웠다. 살람 말레이쿰. 그 부드러운 발음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