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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Hobby/인터뷰 후보. Interviewee

불굴의 의지 양궁 김경욱 - 활은 마음으로 쏘는 것.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아야 과녁을 꿰뚫는다.

by 202020 2010.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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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우리는 양궁하면 재미없게 느껴졌었다. 맨날 올림픽에서 금,은,동을 휩쓰니 말이다.
요즘에는 외국 선수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결승전에서 피마르는 싸움을 한다.
그것도 세계양궁협회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너무 잘하니 규정을 여러차례 바꿔서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국가대표로 뽑히면 메달이 거의 확정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정장 올림픽보다도 국가대표 선발전이 더 힘들고 어렵다고 한다.

운동선수들은 매일매일 피와 땀을 쏟아가며 훈련을 한다.
중학생때 잠깐 학교 태권도부 선수들과 동계훈련을 한 적이 있다.
나름 운동에 대해 자신이 있었던 터라 별 걱정없이 왠만큼은 따라가겠거니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운동량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며 태권도부 친구들이 웃느라 난리가 났다.
다행히 그들에게 재미를 주어 훈련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내 무거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고,
열흘만에 각막염을 핑계로 훈련을 중단하면서 얼마나 운동선수들이 훈련을 힘들게 하는지 경험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훈련을 힘들게 했는데, 단 몇초의 실수와 방심으로 몇년간 준비해왔던 일이 무산되었을때의 심정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실패를 딛고 일어서 다시 성공했다면 그 또한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기적의 사람이 있다.

어릴때부터 신궁으로 불리우던 고3짜리 여자아이 김경욱은 그토록 꿈꿔왔던 올림픽에 나가기 바로 직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떨어졌는데,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88서울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그녀는 계속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최종 선발전에서 마지막 3개의 화살이
10점 만점에 꽂혔으나 심판이 아직 확인하기 전에 무심코 화살을 먼저 뽑아 0점 처리되고 말았다.
국가대표에서 떨어지고 한국은 서울올림픽에서 개인전 금,은,동메달 단체전 금메달을 모두 휩쓸었다.
그것을 본 김경욱은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무리한 연습으로 어깨 부상 등이 겹치면서 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선발전에는 출전조차 못했고,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선발전에서는 초반에 탈락하는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태릉선수촌 내에서도 지독하기로 소문난 지옥훈련을 앞서 이겨내며 다시 일어섰다.

또한 그로부터 8년뒤인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한 김경욱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개인전 결승에서 표적 정중앙에 설치돼 있는 초소형 렌즈를 맞히는
'10점 만점 중의 만점'을 두 차례나 기록,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확률상으로 1만분의 1도 넘는 불가능한 기록이었다.
'퍼펙트 골드'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인터뷰에서 김경욱은 이렇게 말했다.

"긴장을 풀려고 '이건 연습이야'라는 자기 암시를 계속 했어요. 그러다가 어이없게 진짜 연습 때처럼 한 거에요.
애로우마크를 통해 점수는 확인됐지만 규정에 어긋난 만큼 승복했어요. 어리니까 앞으로 기회가 많은 거라고 생각했고요"

"원동력은 '오기'라고 생각해요. 흔들릴 때마다 고생하시는 부모님과 지옥 같았던 훈련 당시에 흘린 땀을 떠올렸어요.
다른 모든 걸 포기하고 양궁에 전념한 만큼 올림픽 금메달을 딸 때까지 가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거든요."

그런 그는 후배들에게 '오뚝이 정신'을 당부했다. "실수나 실패는 누구나 한다"면서 "중요한 건 다시 일어서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젊은 회장님(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 대한양궁협회 회장·아시아양궁연맹 회장)이 지원을 아끼지 않는 만큼
선수로서의 기본 자세를 지키면서 불굴의 정신을 발휘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며.

이 세상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쉽게 사는 것은 제대로 된 삶이 아닌 것이다.
어차피 어렵게 사는 것, 더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실패의 상황에서도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김경욱 선수에게 감사드린다.

- 김경욱은 -
1970년 4월 18일 여주 출생
1980년 여주 여흥초등학교 4년 양궁 입문
1987년 여주여종고 2년 국가대표 선발
1989년 세계선수권대회 개인 준우승, 단체 우승
1990년 아시안컵 개인·단체 우승
1994년 히로시마국제양궁대회 개인·단체 우승
1996년 프레올림픽 개인 준우승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개인·단체 금메달
1996년 체육훈장 청룡장 수훈
1997년 전 빙상 국가대표 이인훈씨와 결혼
2001년 세계선수권대회 개인 준우승, 단체 3위
2004년 현대모비스 선수 겸 플레잉 코치
2004년 아테네올림픽 양궁 KBS 해설위원
2007년 수원시청 선수,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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