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양식당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식탁에 놓인 음식을 입으로 나를 때 동양인들은 주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는 데 반해, 서양인들은 꼬챙이처럼 생긴 포크를 쓴다. 어려서부터 젓가락을 사용하는 데 익숙한 동양인들은 포크로 음식을 찍어 올리는 것이 아무래도 불편하고 어색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양식당에 가면 종업원에게 혹시 젓가락을 가져다 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곤 한다.
그런데 그 반응이 여러 가지다. 대부분의 경우는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집에는 젓가락이 준비돼 있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고는 그만이다. 고객만족을 위한 추가적인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고객 서비스의 수준이 괜찮은 편에 속한다. 어떤 집 종업원은 한심하고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과 목소리로 『아니, 양식당에서 젓가락을 찾으시면 됩니까?』라면서 거의 윽박지르는 투로 나오는 때도 있다. 고객을 아예 몰상식한 사람으로 취급해서 무안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제법 이름있고 품격높은 호텔의 양식당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예! 알겠습니다』 하고는 두 말 없이 젓가락을 가져다 준다. 대개는 가까운 일식당이나 중식당에서 얻어다 주는 눈치이고, 일부 고급 식당에서는 처음부터 미리 준비해 놓고 있는 것 같았다.
이처럼 간단한 요구에 대한 반응 한가지만 보고도 대충 그 기업의 서비스 수준을 짐작할 수가 있다. 어쨌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양식당에서는 젓가락을 준비할 필요가 없고, 손님은 손님대로 젓가락을 요구해서도 안된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우리 사회에는 있는 것 같다.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 변화와 혁신의 출발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고객이 원한다면 그 요구가 비도덕적이거나 불법적인 것이 아닌 한, 젓가락 아니라 전봇대라도 갖다 줄 정도의 서비스정신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고객의 요구가 있기 전에 미리 그것을 알아내고 먼저 찾아가서 고객을 감동시켜 주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서비스야말로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진짜 서비스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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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당의 젓가락 - 李水彰(삼성화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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