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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Hobby/인터뷰 후보. Interviewee

중국법 터줏대감 법무법인 신세기 정연호 대표 변호사

by 202020 2009.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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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유학 1호 검사,중국 진출 최초 법률자문사 설립,사법연수원과 서울대 법대 1호 중국법 강사….정 변호사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 그가 중국법 전문가임을 방증한다. 그가 중국에 진출한 지 벌써 올해로 8년째.중국에 설립한 법률자문사 '베이징국연자문유한공사'에는 중국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인은 물론 중국인 변호사도 있다.

중국인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이곳이 '국제거래 변호사 양성소'라고 통할 만큼 인기가 높다. 그러나 아직 '돈벌이'는 신통치 않다. 중국 시장을 선점하고도 큰 돈을 못번 이유가 있단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조차 한국에서 진출한 로펌에 사건을 맡기지 않아요. 소송을 자신있게 맡을 수 있는 로펌이 몇개나 될지 의문입니다."

최근 대형 로펌을 중심으로 중국 진출 붐이 일고 있지만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라는 얘기다.

"중국 로펌 소속 변호사 수는 수백명 단위입니다. 로펌당 파견 변호사 숫자가 최소한 20명은 넘어야 중국 로펌들과 경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중국 진출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출발부터가 '돈벌이'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1986년 성남지청 검사로 있을 때 일본 유학을 한 수석검사가 중국 유학을 개척해 보라고 권유했습니다.
한문에 관심이 많았던 제가 적임자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은 미수교국.유학은 고사하고 입국 자체가 어려웠다. 그런데 뜻밖에 1991년 10월 문교부 해외시찰단원으로 뽑혀 난생 처음 중국 땅을 밟았다. 3년 뒤 베이징대 유학길에 올랐지만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온통 안타까운 현실뿐이었다. 중국 베이징의 한국 대사관에도 법무부에서 파견나온 법무관이 있었다. 하지만 직책만 법무관이지 검사가 아닌 출입국관리국의 비자담당 영사였다. 법률 분야에는 문외한이나 다름 없다. 그런데도 한국 기업인과 교민들은 중국법 때문에 낭패를 볼 때마다 "대사관은 왜 법률 자문을 안해 주느냐"며 불만을 제기했다. 유학생 신분으로 이를 목격한 정 검사는 '중국법을 아는 한국 사람이 이렇게 없는가'하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귀국 후 고민을 거듭하다 2년 만에 검사직을 박차고 나왔다. 물론 어려운 결단이었다.

1975년 진주기계공고를 졸업한 정 변호사의 동아대 법대 학번은 79학번이다. 인쇄소 직공과 부산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고교 졸업 후 4년 만에 야간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이후 주경야독식으로 공부해 4년반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처럼 천신만고 끝에 따낸 검사직을 그만둔다는 것이 그로서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인 98년 중국에 컨설팅 회사인 법률자문사를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중국통 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미흡하지만 중국에 다잡기한 결과물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르노삼성의 베이징사무소 설립 절차를 대행했고,INI스틸이 중국에 진출할 때 법률 자문도 했다. 베이징 법률자문사는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중국진출기업 지원센터와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 수출진흥센터로 지정돼 있다. "국내에서는 사건 처리 건수에 한계가 있습니다. 중국에 탄탄한 기반을 다져 놓은 만큼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면 큰 수익을 내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의 블루오션은 지금부터 본격 시작되는 셈이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입력: 2005-09-26 18:20 / 수정: 2005-09-26 18:20 한경닷컴

(원문보기)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5092673511&intyp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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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독, 야간대학 후 사법고시 패스. 영화 같은 이야기.
이제는 중국에서의 변호사 활동.
얼마나 하고 싶은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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