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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물의 명품선언, 최가철물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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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중반 서울 을지로 철물점 ‘순평금속’에서 임시직으로 일을 시작한 최홍규 대표는 당시 대학진학에 실패한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일을 배워가면서 철제 가공에 재미를 붙였고, 지금의 ‘최가철물점’을 만들었다. 그때만 해도 이 일이 그의 천직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에게 철물점 일은 단순히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일 뿐이었으니까. “유식한 것을 이길 수 있는 건 단 한가지 무식이다.” 라고 말하는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일이었기에 남들과 다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상호에 집 가(家)자를 넣은 ‘최가철물점’은 자신의 모든 자존심을 걸고 제품을 만든다는 최홍규대표의 장인정신이 어려있다. 독학으로 시작해 지금의 성공적인 '최가철물점'이 된 이곳은 이제 많은 식구들과 함께 최홍규 대표의 장인정신을 함께 이어나가고 있다. |
철물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제품을 만드는 이곳은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꼭 필요한 자재들을 모아 취급하는 하드웨어팀과 직접 디자인을 의뢰 받아 제품을 제작하는 디자인팀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하드웨어팀은 기성 제품을 취급 하며 판매와 영업의 비중이 큰 반면, 디자인팀에서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금속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취향에 따라 디자인 작업을 한다. 작은 생활용품에서부터 큰 철제가구에 이르기까지 철물로 만들어 질 수 있는 모든 제품을 취급하는 이곳은 언제나 분주하다. |
그 동안의 인테리어 소품들이 얼마나 싸고 오래 쓰느냐가 관건이었다면, 지금의 ‘최가철물점’이 꿈꾸는 소품들은 ‘소장가치’가 높은 작품들이다.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실용적이고 감각적인 고급제품을 선보이면서도 적은 양만 생산해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함을 느끼게 하였다. |
스스로를 철물쟁이라 부르는 최홍규 대표는 단순히 제작된 철물을 판매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대로 철물에 새 생명을 부여하였다. 모든 일상이 영감이 되어준다는 그는 항상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독특한 물건이 있으면 스케치 하는 것을 빼먹지 않는다. 체계적으로 공부한 디자이너들을 제치고 이 업계의 선두주자가 되기까지 수없이 많은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지금의 ‘철물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
‘최가철물점’을 이끌어 가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하였는가? 학력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래서 처음 강남에 카페식의 철물점을 생각한 것도 콤플렉스와 무관하지 않았다. 철물업을 시작하고 나서 동창들을 만났는데도 명함을 내밀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철물을 사랑한다. 그랬기에 나의 성씨를 걸고 철물점을 열었다. 자식들에게는 그런 편견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더욱 열심히 해오고 있다. ‘쇳대(자물쇠) 모으기만 30년이 넘었다’라는 말을 들었다. 어떤 계기로 모으기 시작하였는가? 우리 곁에서 어느새 사라져버린 전통 쇳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즐거움이다. 철물과 인연을 맺으며 모으기 시작했고, 이것들을 모으는데 내 젊음을 다 쏟아 부었다. 작품활동을 하는데 있어 쇳대는 아이디어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을 무쇠 쇳대,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사용된 것을 합하면 약 3000여 점에 이른다. 그 옛날에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구조 때문에 아직까지 열 수 없는 쇳대도 있다. 지금까지 수집하신 쇳대(자물쇠)들로 박물관을 열었다고 알고 있다. 철물을 다루는 나에게 있어 옛 자물쇠는 철의 쓰임새나 용도, 100년 200년이 지난 뒤 쇠의 질감 등을 공부하는 데 더없이 좋은 자료였다. 열아홉 살 때부터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모든 일을 제치고 쇳대 모으기에 집중했다. 그 결과 드디어 작년 11월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한국 최초로 쇳대박물관을 열수 있었다. |
현재 기획하고 있는 것이 있나? 몇 가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먼저, 건축가들에게 생활용품을 디자인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디자인에 착수했고, 이를 브랜드화해서 상품화할 예정이다. 그 다음은 순수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인적 자원밖에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종의 ‘자구책’이나 ‘돌파구’인 셈이지만, 이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 목표인 '대장간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이미 집게, 농기구 등 1000여 점을 모았다. 쇠나 철에 대한 자신만의 남다른 신념이 있을 것 같은데… 대부분 사람들이 쇠는 차고 무겁다고 생각하지만 쇠의 본질은 따뜻하고 소박하고 부드럽기 때문에 문화공간과 무척 잘 어울린다. 눈에 보이는 것, 그리고 손에 만져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쇠로 만든 작품들이 실용성, 예술성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면 기존에 '철물점'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철물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쇠에 미쳐야 한다. 쇠붙이 얘기만 나오면 피가 들끓어야 성공할 수 있다. 비단, 철물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뭐든지 성공을 하려면 그것에 미칠 줄 아는 노력과 끈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명성도 따라올 것이고, 돈도 따라오게 될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것의 1인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닫힌 문의 쇳대도 금방 열리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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