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업. Business

최가철물점 - 그래, 바로 이곳이다.

by 202020 2010. 3. 18.
반응형
철물의 명품선언, 최가철물점



서울 논현동의 가구 거리라고 일컬어지는 곳에 독특한 모습의 ‘최가철물점’이 있다. 1989년에 세워져 15년 동안 최홍규 대표의 피땀이 녹아 있는 이 철물점은 지상 2층, 200여 평 규모의 대규모 철제 건물로, 그 속에 있는 모든 인테리어 제품들은 “철제 용품에 공예 개념을 도입했다”는 그의 말처럼 하나하나가 예술품이다.

국민들의 의식수준과 생활수준의 향상은 값싸고 단순한 제품보다는, 기풍 있고 고급스러운 제품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게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일찌감치 파악한 최홍규 대표는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성이 가미된 물건을 만들 생각을 했다. 개성이 없고, 독특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철물에 그의 혼을 불어넣어 저마다의 특색 있는 제품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단순한 철물이 마이더스의 손길로 인해 예술품이 되었고, 거기에 비즈니스의 도입으로 ‘성공’이라는 열쇠를 손에 쥐게 된 바로 그 곳, ‘최가철물점’에 함께 들어가 보자.

취재 | 권영선 기자 (happy@yoondesign.co.kr)
철물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못과 망치 같은 투박한 철물을 잔뜩 쌓아놓은, 약간은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가 그것이다.
그러나 ‘최가철물점’은 기존의 그런 이미지를 벗고, 철물에 새로운 예술의 바람을 일으켰다.
인테리어부터 범상치 않은 이곳은, 목재와 유리, 스테인레스 스틸의 박스 세 개로 이루어진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자로 잰 듯이 똑같이 만들어진 주변의 건물들과는 첫인상부터 달랐던 ‘최가철물점’은 내부 인테리어 또한 색달랐다. 실용성에 바탕을 둔 기존의 철물점이 멋스럽게 현대화 되었다고나 할까? 탁 트인 공간의 철물들은 더 이상 철물이 아니었다.
10여 명의 디자이너와 기능공들은 이 곳에서 고객이 원하는 컨셉에 맞춰 각종 철제 인테리어 용품들을 디자인한다.
이곳에서 파는 제품들은 평범한 생활 철물들을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재해석하여 미적, 예술적 감각을 가미하여 만들어진다. 예술의 전당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 독립기념관의 쓰레기통과 차단봉, 전국 국보급 사찰에 있는 안전 촛대 등이 이 철물점 출신이다.


70년대 중반 서울 을지로 철물점 ‘순평금속’에서 임시직으로 일을 시작한 최홍규 대표는 당시 대학진학에 실패한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일을 배워가면서 철제 가공에 재미를 붙였고, 지금의 ‘최가철물점’을 만들었다.
그때만 해도 이 일이 그의 천직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에게 철물점 일은 단순히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일 뿐이었으니까.
“유식한 것을 이길 수 있는 건 단 한가지 무식이다.” 라고 말하는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일이었기에 남들과 다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상호에 집 가(家)자를 넣은 ‘최가철물점’은 자신의 모든 자존심을 걸고 제품을 만든다는 최홍규대표의 장인정신이 어려있다.
독학으로 시작해 지금의 성공적인 '최가철물점'이 된 이곳은 이제 많은 식구들과 함께 최홍규 대표의 장인정신을 함께 이어나가고 있다.
철물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제품을 만드는 이곳은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꼭 필요한 자재들을 모아 취급하는 하드웨어팀과 직접 디자인을 의뢰 받아 제품을 제작하는 디자인팀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하드웨어팀은 기성 제품을 취급 하며 판매와 영업의 비중이 큰 반면, 디자인팀에서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금속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취향에 따라 디자인 작업을 한다.
작은 생활용품에서부터 큰 철제가구에 이르기까지 철물로 만들어 질 수 있는 모든 제품을 취급하는 이곳은 언제나 분주하다.
그 동안의 인테리어 소품들이 얼마나 싸고 오래 쓰느냐가 관건이었다면, 지금의 ‘최가철물점’이 꿈꾸는 소품들은 ‘소장가치’가 높은 작품들이다.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실용적이고 감각적인 고급제품을 선보이면서도 적은 양만 생산해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함을 느끼게 하였다.


스스로를 철물쟁이라 부르는 최홍규 대표는 단순히 제작된 철물을 판매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대로 철물에 새 생명을 부여하였다.
모든 일상이 영감이 되어준다는 그는 항상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독특한 물건이 있으면 스케치 하는 것을 빼먹지 않는다. 체계적으로 공부한 디자이너들을 제치고 이 업계의 선두주자가 되기까지 수없이 많은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지금의 ‘철물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최가철물점’을 이끌어 가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하였는가?
학력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래서 처음 강남에 카페식의 철물점을 생각한 것도 콤플렉스와 무관하지 않았다. 철물업을 시작하고 나서 동창들을 만났는데도 명함을 내밀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철물을 사랑한다.
그랬기에 나의 성씨를 걸고 철물점을 열었다. 자식들에게는 그런 편견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더욱 열심히 해오고 있다.

‘쇳대(자물쇠) 모으기만 30년이 넘었다’라는 말을 들었다. 어떤 계기로 모으기 시작하였는가?
우리 곁에서 어느새 사라져버린 전통 쇳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즐거움이다.
철물과 인연을 맺으며 모으기 시작했고, 이것들을 모으는데 내 젊음을 다 쏟아 부었다.
작품활동을 하는데 있어 쇳대는 아이디어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을 무쇠 쇳대,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사용된 것을 합하면 약 3000여 점에 이른다. 그 옛날에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구조 때문에 아직까지 열 수 없는 쇳대도 있다.

지금까지 수집하신 쇳대(자물쇠)들로 박물관을 열었다고 알고 있다.
철물을 다루는 나에게 있어 옛 자물쇠는 철의 쓰임새나 용도, 100년 200년이 지난 뒤 쇠의 질감 등을 공부하는 데 더없이 좋은 자료였다.
열아홉 살 때부터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모든 일을 제치고 쇳대 모으기에 집중했다.
그 결과 드디어 작년 11월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한국 최초로 쇳대박물관을 열수 있었다.
현재 기획하고 있는 것이 있나?
몇 가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먼저, 건축가들에게 생활용품을 디자인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디자인에 착수했고, 이를 브랜드화해서 상품화할 예정이다. 그 다음은 순수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인적 자원밖에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종의 ‘자구책’이나 ‘돌파구’인 셈이지만, 이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 목표인 '대장간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이미 집게, 농기구 등 1000여 점을 모았다.

쇠나 철에 대한 자신만의 남다른 신념이 있을 것 같은데…
대부분 사람들이 쇠는 차고 무겁다고 생각하지만 쇠의 본질은 따뜻하고 소박하고 부드럽기 때문에 문화공간과 무척 잘 어울린다.
눈에 보이는 것, 그리고 손에 만져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쇠로 만든 작품들이 실용성, 예술성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면 기존에 '철물점'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철물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쇠에 미쳐야 한다. 쇠붙이 얘기만 나오면 피가 들끓어야 성공할 수 있다.
비단, 철물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뭐든지 성공을 하려면 그것에 미칠 줄 아는 노력과 끈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명성도 따라올 것이고, 돈도 따라오게 될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것의 1인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닫힌 문의 쇳대도 금방 열리게 될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 문에 다는 장식마저도 고급 제품을 찾는다. 비즈니스 면에서 볼 때 이 같은 현상은 기존의 생계형 일을 특화된 사업으로 탈바꿈하게 한다. 최가 철물점은 이 같은 시대 변화의 트렌드를 재빠르게 읽어내 실생활에 쓰이는 철물을 고급화해 성공한 대표적인 업체다. 


70, 80년대만 해도 철물점에서 파는 문고리나 열쇠 등 철물 대부분은 실생활에 쓰이는 것들이다 보니 미적 감각보다는 실용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90년대 들어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실용성과 함께 예술성이 가미된 물건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이 같은 분위기는 철물에도 이어졌다.


일반 서민이 쓰던 투박하지만 정겨운 철물부터 화려하게 장식된 왕실 자물쇠까지 다양하고 멋스럽게 디자인된 다양한 철물이 등장했다. 이런 사회 변화 속에서 철물의 개념을 가장 먼저 바꾼 업체가 바로 ‘최가 철물점’이다. 기존의 철물에 디자인과 비즈니스의 개념을 도입해 성공을 거두었다.

 

 Step 1       접근하기

을지로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

 

국내 첫 철물 디자이너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최홍규 대표는 철물과 아주 우연한 계기로 인연을 맺었다. 고교를 졸업하고 막연히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을지로의 한 철물점에 취직했다.


그때만 해도 이 일이 그의 천직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에게 철물점 일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일 뿐이었고, 특별히 마음에 들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철물점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철물을 다루는 일이 자신의 천직이라는 강한 확신이 생겼다. 그때부터 그의 철물에 대한 장인정신이 꽃피기 시작했다. 

 

 Step 2       토대 만들기

직접 디자인한 철물을 선보이다

 

최 대표는 “철물을 판다는 생각 대신 ‘나’를 판다는 생각으로 성실히 일했다.”라고 말한다. 손님이 가게에 들어오면 끝까지 손님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고 그에 상응하는 철저한 직업정신을 발휘했다.


한번 시작한 일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그의 욕심도 한몫했다. 독학으로 금속공예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자신만의 디자인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제작된 철물을 파는 것보다 자신의 생각대로 철물을 만들고 열정을 쏟았다.


디자인을 따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독학으로 시작한 것이 그에게는 더 좋은 조건이 됐다. 고정된 사고의 틀에 갇히지 않고 오히려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다. 자신을 ‘철물장이’로 표현할 만큼 자신의 일에 푹 빠진 그에게 철물은 자신의 삶이었고, 일상생활이었다. 항상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독특한 물건이 있으면 특징을 스케치했다. 이렇게 만든 제품이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게 일에 몰두한 지 10년 만에 그는 업계에서 알아주는 명사가 됐다.

 

Setp 3        비즈니스 입히기

고급화로 철물을 업그레이드시키다 

 

최홍규 대표가 자신의 성씨를 내건 ‘최가 철물점’을 차린 것은 1989년. 철물과는 전혀 인연이 없을 것 같은 강남의 청담동에 7평짜리 매장을 열었다. 본격적인 비즈니스를 시작한 셈이다.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 주위의 시선은 회의적이었다. 최근의 고급 디자인 추세를 타고 유행을 따르는 특이한 가게가 한 곳 생긴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유행만 좇는 가게라면 언제든지 누구나 열 수 있다.


하지만 최가 철물점은 달랐다. 그가 10여 년의 세월을 철물점에서 일해 오면서 쌓아온 기본기와 사업에 대한 철저한 정신이 숨어 있었다. 게다가 한 달 정도 화랑 전시회에 참가했던 경험을 통해 같은 제품이라도 진열 형태나 공간미가 고객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은 매장을 어둡고 복잡한 곳이 아닌 부티크처럼 꾸몄다.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이 아무리 작은 물건을 사도 그보다 더 좋은 것을 사는 것처럼 느끼게 해 제품의 가치를 더 높였다. 제품도 더욱 차별화했다. 80년대 후반,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거치면서 인테리어 소품에도 고급화된 디자인 감각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동안의 인테리어 소품들은 얼마나 싸고 오래 쓰느냐가 관건이었지만 높아진 소비자의 눈은 장식효과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실용적이고 감각적인 고급제품을 선보이면서도 적은 양만 생산해 구입하는 사람에게 특별함을 느끼게 했다.


이 같은 전략이 고객들에게 통하면서 최가 철물점을 찾는 단골들이 늘어났다. 매장은 두 배로 커졌고 본점만으로는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어 두 곳으로 확대되었다. 이 같은 과정에서 최홍규 대표는 우리 나라 최초로 ‘철물 디자이너’라는 이름도 달게 됐다. 또 그의 디자인도 인정받아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그를 찾아와 현장교육을 받기에 이르렀다.

 

Step 4        비전 세우기

본격적인 철물점 경영에 나서다

 

기존 철물점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뒤바꾼 최가 철물점은 국내 최고의 철물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최홍규 대표는 최가 철물점을 연 당시 ‘업계에 한 획을 긋겠다’고 말했던 당시의 목표를 충분히 이루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는 솟대 박물관을 여는 등 잠시 사업과는 다른 일을 했지만 올해부터는 최가 철물점의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철물점의 경영을 완전히 전산화하고 제품에 바코드를 부착하는 등 시스템을 정비하고 새로운 비전을 세우고 있다.


그는 최가 철물점이 철물의 보고이자 디자인의 산실로 토대를 마련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또 이전부터 구상해 온 ‘대장간 전시회’를 기획해 사업 못지않게 철물업을 장인 정신을 이어가는 한 분야로 만들 계획도 세우고 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