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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름 : 일하기 싫은 사람을 위한 책
지은이 : 나카지마 요시미츠
옮긴이 : 오근영
출판사 : 국일미디어
글쓴시간 : 02/05/03 19:46
그냥 가벼운 내용의 책일 것이라는 짐작은 삶에 대한 깊은 철학의 내용으로 인해 책의 첫 장에서 부터 여지 없이 깨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가끔있다. 그냥 잠자고, TV 보고, 게임등을 하는 그런 무위도식의 생활들...
그렇게 지낼 때조차 행복을 느끼는 것을 보면 난 무지무지한 낙관주의자이거나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놈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런 생활은 여러 이유로 인해 금방 '끝나버린다. 어쩔때는 그렇게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고 다른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싶기도 하고... 살면서 뭔가가 빠진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허무하기도 하고...
친구가 해주던 말이 생각이 난다.
'청춘은 고민하는 때' 라고...
죽을 때까지 고민하며(고민이라는 말이 너무 어둡게 느껴지면 생각하며로 바꿀수도 있겠다) 살아가는 나.
허무하면서 충실한 의미로 다가오는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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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푸념을 진지하게 인식하지도 못한 채 대학에 합격한 순간, 취직에 성공한 순간, 손자가 무사히 탄생한 순간 '아, 이정도면 충분해'하는 기만적인 태도로 돌아가 버립니다. 다시 말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것들을 까맣게 잊은 척하면서 자신을 속이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죠. ... 그러나 그 술수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고뇌는 매우 '건전한' 고뇌이기 때문에 그것을 소중하게 여겨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계속해서 고민해야만 하고, 그로부터 속임수 없는 고유한 감촉을 포착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모든 업무에서 승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특히 학력 면에서 줄곧 승자의 위치에 있었던 사람일수록 사회에 나오는게 두렵습니다. 학력만이 모든 걸 말해주는 사회가 아니고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요소가 얽혀 있어 줄곧 승자로 계속 살아갈 수 없을 거라는 예감에 공포를 느끼는 것이지요.
좀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인생이란 '부조리'라는 한마디로 집약 할 수 있다는 것,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것, 아무리 분골쇄신 노력해보아야 그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 아무리 빈둥거리며 인생을 보내는 사람도 머리 위의 선반에서 떡이 떨어지는 일이 있다는 것, 아무리 품행이 방정한 인생을 보내도 죄를 뒤집어쓰는 일이 있고, 아무리 악랄한 인생을 보내도 칭찬받고 찬미하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인격적으로 형편없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단지 다양한 우연과 운에 의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결과인데도 불합리하게도 이러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우리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습니다. 더욱이 매우 우습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지 못한 사람을 멸시하는 현대사회의 풍조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분명 뭔가 한 가지는 있을 것이다'는 충고 어린 설교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당신은 스스로의 욕구에 귀를 막을 게 아니라 거꾸로 그 목소리에서 작은 힌트라도 발견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를 철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감히 말하겠습니다. 당신 같은 청년은 설령 불행해지더라도 '자기 주제를 모르는' 삶을 열심히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당신이 불행에 빠져 가족 등 주위 사람들을 불행으로 떨어뜨리게 할지라도 그 삶을 관철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 어쨋든 당신은 우선 아무리 불가능한 일이라도, 아무리 크게 어긋난 일이라도 재능이나 나이, 부모의 반대나 생활의 안정 등 모든 것을 끊어 버리고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알았으면 그것을 실현할 갖가지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 정도면 됐지'하는 자세로 일관하지 않는 한 그들은 프로이고, 그들은 스스로의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공통된 뭔가가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절실하게 뭔가를 찾고 있습니다. 그 찾는 마음은 일종의 광기와 같은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들은 왜 그토록 진지하게 추구하는 걸까요? 연극이든 요리든 철학이든, 즉 모든 것은 그러한 자기 실현 방법이 없었다면 자신의 인생은 너무나 무의미하다는 직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다른 삶따위는 생각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구요? 세상 사람들은 불평등과 불합리를 견디지 못하고 그냥 납득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늘 여기에 숨어 있는 불합리를 자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불합리를 받아들이는 자신을 자각하는 그런 이중적인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이미 당신은 충분히 생각했을 테니까 '나에게 과연 능력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라는 질문을 여기서 단절해 버리십시오. 그건 어디까지나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겁니다. 동시에 '그 일에 보람을 느낄까, 못 느낄까'하는 그럴 듯한 말 따위는 꿀꺽 삼켜버립시다. 그것도 최종적으로는 일을 통해서밖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에 대해 막연히 수십 년을 생각해보아야 아무 대답도 나오지 않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타인을 향해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 이상,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그것을 단련하지 않는 이상 강인한 사색이 되지 못합니다. 당신만의 고유한 사색이 되지 않습니다.
직업에는 타인에 의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타인의 시선을 받음으로써 단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척도가 돈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돈을 일의 목표로 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돈을 하나의 기준으로 할 것입니다.
어쨌거나 그래도 인생은 꽤 묘미가 있는 겁니다. 인생은 역시 불합리의 와중에서도 '아름답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인생을 보내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죽는다는 건 대체 어떤 것일까요. '잘 사는 것' 이란 '어차피' 죽는다는 의미를 계속 물으며 사는 것입니다. 그 공허함이나 부조리로부터 눈을 떼지 말고 '그게 뭔가'하고 계속 질문을 던지면서 사는 것이죠. 다시말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어차피' 부조리에 뛰어든 겁니다. 그 의미를 묻는 것을 살아가는 최대의 이유로 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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