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광복절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기념 집회가 두 군데서 열렸다. 처음에는 저게 또 저러다 치고 받고 싸우지나 않나 걱정도 들었는데 다행히 그런 충돌 사태 없이 끝났다. 물론 두개로 나눠서 할 것 없이 같이 모여서 한다면 더 좋은 일이었겠지만 어차피 그게 어렵다면 끼리끼리 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이런 사태를 일컬어 '국론분열'이라고 할 수도 있고, 해방후의 혼란이 재연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언제 국론이 깔끔하게 통일된 적이 있던가? '국론이 통일되어 있으니 더 이상 군소리 말라'는 차원에서 '국론통일'이 선전된 적은 있었지만 진실로 '국론통일'이 이뤄진 적은 적어도 내가 태어난 이후로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도대체 몇천만이 모여 사는 나라에서 어떻게 전국민의 의견이 일사불란하게 통일될 수 있겠는가. 통일된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많아야 대여섯이 모여 사는 가정에서도 자주 의견이 맞지 않아 고성이 오가는 게 인간살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 국론 분야에 통일론자들이 너무 많다. 나라를 통일하자는 거야 좋은 일이지만, 너와 나의 의견을 어째든 통일하자는 것은 때로 심한 억지가 되니 문제다. 대화야 필요하지만 양자가 충분히 자기 의견을 개진하고 나면 분명히 어느 한쪽으로 논쟁이 정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이 국론통일론자들의 문제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느끼다시피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은 논쟁을 치열하게 한다고 해서, 대화를 깊이 한다고 해서 쉽게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공 있는 현실과 거기에서 파생된 문제들은 대개 논쟁 쌍방이 파악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설 정도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무슨 일이든지 우리는 사실 백퍼샌트 알지 못하는 현실에 대하여 이러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논쟁 자체가 완전히 무용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논쟁이나 대화 자체가 한계를 가진 것이라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논쟁을 충분히 하되 어느 시점에서는 그동안 파악된 정보에 바탕해서 선택을 해야만한다. 언제까지나 논쟁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어쨌든 이게 우리가 사는 모습이다. 그러니 이제 누가 나아게 해를 미치는 것만 아니라면 그 사람의 의견을 논쟁과 대화를 통해 내 것과 같게 만들려고 하지 말자. 누가 내 생각과 많이 다르다고 해서 파르르 떨치고 일어나 '웬 헛소리냐'고 싸우지 말자. 그냥 인정해주자. 광복절의 두 집회를 보면서도 콩가루 집안이라고 욕하지 말고 이제야말로 우리나라가 이견을 존중할 줄 아는 문명국이 되었다고 기뻐하자. 그러면 아마 국론 통일을 위해서 맨날 싸울 때보다는 나라가 훨씬 평화로워질 것이다.
- 이상 한나라당 골수 지지자인 장인과 10여년간 평화를 유지해온 한 사위가 전해드리는 생활의 지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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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론분열 - Maxim 9월호 editor's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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