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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한사람의 치열한 자기투쟁...

by 202020 2009.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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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름 : 아리랑
지은이 : 님 웨일즈
옮긴이 : 조우화
펴낸곳 : 동녘
출판일 : 1984년 8월 30일
책가격 : 3000 원

P 24
육체는 빵으로 살찌지만 정신은 기아와 고통으로 살찐다.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에 의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어야만
비로소 지식인은 행동하고 결정할 수 있게 된다. 김산은 이 약점을 극복하였으며, 그래서 지식인적 패배주의라는 질병에
희생되지 않았던 것이다.실제로 지식인이 남한테 배반당하는 경우란 없다.
오직 자기 자신과 자기 직업에 의해서만 배반당할 수 있을 따름이다. 지식인의 책무는 미래의 모습을 그리는 것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역학적 변화의 소재도 이해하고 분석해 내야만 하는 것이다.
여러가지 다양한 세계가 자기의 단순하고 제한된 설계에 꼭 들어맞기를 기대한다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가!
역사를 비판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역하는 그 행동이 단조롭지도 않고, 그 계획이 옹졸하지도 않다.
기껏 하찮은 판단을 내리고 있는 자기네 올림프스 산의 권좌에서 그네들이 내던지는 것은
벼락이 아니라 고작 폭죽일 따름이다.
님 웨일즈의 김산에 대한 이야기 (서문에서)

P 26
이 일을 시작할 때 나는 김산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선 당신의 개략적인 경력을 말씀해 주시고, 그 다음에 당신의 젊은 시절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내 젊음이요?” 하고 그는 익살스럽게 대답하였다.
“틀림없이 나는 이제 겨우 서른 두 살 밖에 안되었지요. 하지만 나는 내 젊음을 어느 곳에선가 잃어버렸답니다.
-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님 웨일즈의 질문에 대한 김산의 대답 (서문에서)

P 35
내가 체험한 인생살이의 큰 윤곽을 개관해 볼 때, 거기에 보이는 것은 다만 뼈를 깍는 아픔 속에서 얻어낸
패배의 연속일 뿐이며, 앞길에는 험준한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내 인생에서 행복했던 기억은 하나도 없다.
나는 세상을 역사에 밀착해서 살아왔다. 역사는 목동의 피리소리에 맞춰서 춤추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부상자의 신음소리와 싸움하는 소리뿐이다. 투쟁하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다.
그밖의 것은 모두 내 세계에서는 하나도 의미가 없다. 바로 그 투쟁의 대립물 속에 나와 인간 생활의 일치가,
나와 인간 역사의 통일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면서 철학적 사색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김산의 이야기(1. 회상에서…)

P 68
1923년 이후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을 믿지 못하였으며 일본인도 역시 한국인을 믿지 않았다.
몇몇 한국인은 자기의 정복자와 함께 일하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그것은 생활비를 벌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어떤 자는 경제적 궁핍 때문에 타락하여 왜놈의 앞잡이 신분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모든 한국인이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왜놈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4. 동경 유학생 시절 중에서…)

P 69
나는 계급적인 증오, 민족적 증오, 개인적 증오, 국가 간의 증오를 수 없이 보아 왔다. 
너무나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잔인성이 더 이상 도덕적 가치로서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승리에 자극되었고 패배로 각성하였다. 그러나 승리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잔혹성을 나는 긍정한다.
잔혹성을 띠지 않는 어떤 역사적 변혁이 일어난다면 커다란 감명를 받게 되겠지만,
그러나 이것은 아름다운 꿈에 지나지 않는다. 오래 전에 나는 청년시절의 유토피아적 환상을 깡그리 떨어버렸다.
(4. 동경 유학생 시절 중에서…)

P 74
만주에 있는 모든 한국인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고 이제나 저제나 하고 독립될 날을 꿈꾸고 있었다.
이 집 저 집 모두 비가 새었지만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수리를 해야 하지?
곧 한국이 독립을 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고국으로 돌아 갈텐데.” 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의 이십 년 가까이 지내왔던 것이다!
(5. 압록강을 건너서 중에서…)

P 157
동지들 사이에서는 그토록 친절하면서도 적에 대해서는 그토록 잔인하다는 것을 나는 생각하였다.
톨스토이 같은 박애주의자는 이와 같은 때에 무어라 말하고 무엇을 느낄까?
틀림없이 톨스토이는 러시아 백성들이 나무에 묶인 채 맞아 죽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잔인함을 끝장내는 것은 잔임함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이 어두움을 비춰주는 빛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8. 해륙풍에서의 삶과 죽음 중에서…)

P 158
그 때 이후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되거나 처형되는 것을 보았는 데 나는 항상 그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내전에 참가하여 싸우는 사람은 이런 일들을 견뎌낼 수 있도록 각자 자기의 철학을 만들어내어야 한다.
나는 남에게 그런 고통을 주기보다는 내가 그런 운명에 떨어지는 쪽이 더 견디기 쉽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누가 죽느냐 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지배계급은 학살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수세대에 걸쳐서 살륙을 해왔던 것이다. 우리는 그들 자신의 무기를 가지고 싸울 뿐이다.
(8. 해륙풍에서의 삶과 죽음 중에서…)

P 160
적의 맹렬한 기총사격을 뚫고 이쁜 아가씨 한 명이 뛰어와서 방긋 웃으며 내 옆에 섰다.
이 아가씨는 공산청년동맹의 가장 훌륭한 지도자 가운데 하나였는데 우리는 이따금씩 함께 일하여
서로 간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던 사이였다. 그녀는 자기가 나의 특별한 여자친구라고 생각하였다.
“당신을 찾으러 안다닌 곳이 없어요. 당신이 죽으면 나도 함께 죽겠어요.” 하고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빨리 엎드려. 총알이 날아오고 있잖아.” 하고 나는 그녀에게 애걸하다시피 말하였다.
잠시후에 그녀에게 말을 걸려고 뒤를 돌아다 보니 남의를 이은 축늘어진 작은 몸만이 보이고
그녀의 머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8. 해륙풍에서의 삶과 죽음 중에서…)

P 169
일차로 백 명이 뇌양을 향해 떠나고 나머지 삼백 명이 그 뒤를 따랐다. 그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행군이었기 때문에 뒤따라 오는자 중에 콜록이는 자가 있으면 누구라도 죽여버리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적병에게 빠싹 붙어서 행군하기 때문에 단 한번만 기침을 해도 대번에 발각되어 우리 모두가 섬멸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허약하고 허기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 전 생애를 통하여 이만한 극기를 본 적이 없었다!
상당수가 결핵에 걸렸거나 물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독감에 걸렸음에도 불고하고
그 위험한 행군기간 동안에 기침을 한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8. 해륙풍에서의 삶과 죽음 중에서…)

P 263
전향을 거부한 것은 관념적이고 어리석고 미치광이같은 짓이었을까?
대중 앞에서 전향을 하여 재차 활동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 것이 단 하나의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간단한 일같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확고히 결심을 하였다. -
 자기 자신도, 자기 당도, 또한 다른 어떤 사람도 절대로 배반하지 말자. 그것은 어리석은 태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진실이었고 또한 그것이야말로 내 도덕심을 편히 쉬게 해주는 반석이었던 것이다.
(22. 다시 일본에 잡히다 중에서…)

P 297 ~ 300
역자 후기 중에서
이 책 『아리랑』은 Song of Ariran - The Life Story of A Korean Rebel, by Kim San and Nym Ivales
(1941, John Day Co., New York)을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김산이라는 한 한국인 독립혁명가의 고뇌에 찬 생애의 기록이다.

이 이야기는 1920∼30년대의 흔란스러운 동아시아사의 대변동 속에 던져진 한 민감한 지식인이며,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이상주의적인 시인이요, 작가인 한 한국인 독립혁명운동가 김산이라는 사람의 개인사(전기)이다.
김산은 이 책의 내용으로 볼 때 분명히 공산주의자였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김산과 이 책을 폐기해야 찰 필요하고도 충분한 이유는 아니다.
엄밀히 이 책을 일어보면 김산은 이데올로기가 만연하던 시대에서 공산주의운동에 참석하고 있던 공산주의자였지만
공산주의적일 사람은 아니었단. 적어도 이 책에서 보여지는 1920-30년대의 김산의 동선은 이데올로기가 요구하는
원칙이 아니라 당면한 싸움의 리듬이 이끌고 있었던 것이고, 그 저변에는 톨스토이류의 인류애,
또는 오늘날의 우리에겐도 어색하지 않은 휴머니즘적 감성이 맥맥히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성숙된 독자의 눈은 이 책에서 이데올로기적 편향과 좀더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성실성을 구별해 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별이 바로 이 땅의 이 시점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보는 데 있어 요구되어지는 안목인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엄밀히 동아시아사 또는 한국 근대사를 전공하지 않는 평범한 시민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역사 속에서 한 개인이 온 믐으로 쌓아올린 역사적 성실성일 것이다. 

 
글쓴시간 : 00/10/06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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