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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칼잡이!
이승규 교수는 많은 사람이 서울아산병원 일반외과 이승규 교수를 ‘당대 최고의 칼잡이’라 부른다.
‘칼잡이’는 외과의사를 통칭하는 용어다. 요즘은 외과도 장기별로 전문화돼, 간만 수술하는 사람,
심장만 수술하는 사람, 위만 수술하는 사람 등으로 세분화된다.
따라서 어느 한 사람을 간암 또는 위암 수술 분야 최고라 말할 순 있지만, 최고의 외과의사라고 부르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그를 “최고의 외과의사”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모든 외과 분야를 통틀어 비교해도 그와 필적할만한 칼잡이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당대 최고임을 나타내는 에피스토 한 토막. 수년전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한만청 교수와
김영삼 대통령주치의를 지낸 고창순 교수가 비슷한 시기에 간암에 걸렸다.
그러나 당시 현직 서울대병원 교수였던 두 분이 간암 수술을 받은 곳은 서울대병원이 아닌
서울아산병원(당시 서울중앙병원) 이승규 교수에게였다.
당시 서울대병원측은 이 사실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질까봐 ‘엄청나게’ 노심초사했다.
그는 토·일요일을 빼면 이틀에 한번꼴로 간 이식 수술을 한다.
이식수술은 보통 오전 9시쯤 시작돼 다음날 새벽에 끝난다. 최고 36시간동안 쉬지 않고 수술한 ‘진기록’도 갖고 있다. 이식이 없는 날엔 간암을 수술하고, 시간을 쪼개 회진·외래진료를 한다.
일요일이건 공휴일이건 하루도 빠짐없이 회진한다. 몸이 열두개라도 부족하다는 말이 그에게 하나도 과장이 아니다.
하루 10시간도 넘게, 그것도 허리를 구부려 온 신경을 집중해 수술한다는 건 엄청난 ‘육체노동’이다.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이 교수는 수술실에 런닝머신을 갖다 놓았다. 그는 외과의사의 첫째 덕목을
“열몇시간씩 서서 수술할 수 있는 튼튼한 하체와 허리”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허벅지는
왠만한 처녀 허리 사이즈 굵기다. 다른 외과의사처럼 술을 마시지도 않으며, 틈나는 대로 팔굽혀 펴기,
철봉 등을 한다. ‘자기관리가 지독한 사람’이란 게 주위사람들의 평가다.
1949년 1월생인 이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서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주 전공은 간 이식. 1992년 8월 뇌사자 간 이식을 처음 성공한 그는 2003년 11월 현재까지 800여건의 간 이식을
시행했으며, 수술 성공률은 95% 정도다. 수술 건수나 성공률 면에서 단연 ‘세계 최고’다.
특히 1994년엔 국내 최초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생체 간이식을 성공했고, 1997년에는 성인의 생체 간이식을
성공했다. 또 두 사람의 간을 조금씩 떼 내 한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세계 최초로 고안, 발표하기도 했다.
덕분에 국제무대서 ‘거물’로 대우 받는 몇몇 안되는 국내 의사 중 한 사람이다.
이 교수는 아직도 수술장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끼니를 떼우고 새우잠을 잔다. 일요일이건 공휴일이건 하루도
빠짐없이 회진하고, 가족 외식도 병원 구내식당에서 한다. 수년전 어머니 장례식날 밤, 위급한 환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수술장으로 달려간 ‘일화’는 지금도 많은 의학도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레지던트때의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무엇인가를 이뤄보겠다는 열정, 그 목표를 위해 빈틈없이 자신을 관리해
가고 있는 그의 노력이 현재의 그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를 ‘최고의 자리’에서 지켜 낼 것으로 믿는다..
이승규 교수는 많은 사람이 서울아산병원 일반외과 이승규 교수를 ‘당대 최고의 칼잡이’라 부른다.
‘칼잡이’는 외과의사를 통칭하는 용어다. 요즘은 외과도 장기별로 전문화돼, 간만 수술하는 사람,
심장만 수술하는 사람, 위만 수술하는 사람 등으로 세분화된다.
따라서 어느 한 사람을 간암 또는 위암 수술 분야 최고라 말할 순 있지만, 최고의 외과의사라고 부르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그를 “최고의 외과의사”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모든 외과 분야를 통틀어 비교해도 그와 필적할만한 칼잡이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당대 최고임을 나타내는 에피스토 한 토막. 수년전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한만청 교수와
김영삼 대통령주치의를 지낸 고창순 교수가 비슷한 시기에 간암에 걸렸다.
그러나 당시 현직 서울대병원 교수였던 두 분이 간암 수술을 받은 곳은 서울대병원이 아닌
서울아산병원(당시 서울중앙병원) 이승규 교수에게였다.
당시 서울대병원측은 이 사실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질까봐 ‘엄청나게’ 노심초사했다.
그는 토·일요일을 빼면 이틀에 한번꼴로 간 이식 수술을 한다.
이식수술은 보통 오전 9시쯤 시작돼 다음날 새벽에 끝난다. 최고 36시간동안 쉬지 않고 수술한 ‘진기록’도 갖고 있다. 이식이 없는 날엔 간암을 수술하고, 시간을 쪼개 회진·외래진료를 한다.
일요일이건 공휴일이건 하루도 빠짐없이 회진한다. 몸이 열두개라도 부족하다는 말이 그에게 하나도 과장이 아니다.
하루 10시간도 넘게, 그것도 허리를 구부려 온 신경을 집중해 수술한다는 건 엄청난 ‘육체노동’이다.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이 교수는 수술실에 런닝머신을 갖다 놓았다. 그는 외과의사의 첫째 덕목을
“열몇시간씩 서서 수술할 수 있는 튼튼한 하체와 허리”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허벅지는
왠만한 처녀 허리 사이즈 굵기다. 다른 외과의사처럼 술을 마시지도 않으며, 틈나는 대로 팔굽혀 펴기,
철봉 등을 한다. ‘자기관리가 지독한 사람’이란 게 주위사람들의 평가다.
1949년 1월생인 이 교수는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서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주 전공은 간 이식. 1992년 8월 뇌사자 간 이식을 처음 성공한 그는 2003년 11월 현재까지 800여건의 간 이식을
시행했으며, 수술 성공률은 95% 정도다. 수술 건수나 성공률 면에서 단연 ‘세계 최고’다.
특히 1994년엔 국내 최초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생체 간이식을 성공했고, 1997년에는 성인의 생체 간이식을
성공했다. 또 두 사람의 간을 조금씩 떼 내 한 사람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세계 최초로 고안, 발표하기도 했다.
덕분에 국제무대서 ‘거물’로 대우 받는 몇몇 안되는 국내 의사 중 한 사람이다.
이 교수는 아직도 수술장에서 라면과 김밥으로 끼니를 떼우고 새우잠을 잔다. 일요일이건 공휴일이건 하루도
빠짐없이 회진하고, 가족 외식도 병원 구내식당에서 한다. 수년전 어머니 장례식날 밤, 위급한 환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수술장으로 달려간 ‘일화’는 지금도 많은 의학도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레지던트때의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무엇인가를 이뤄보겠다는 열정, 그 목표를 위해 빈틈없이 자신을 관리해
가고 있는 그의 노력이 현재의 그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를 ‘최고의 자리’에서 지켜 낼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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