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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름 : 무라카미 라디오
지은이 : 무라카미 하루키
옮긴이 : 권남히
출판사 : 까치글방
글을 쓰고 읽는 것이 지금처럼 쉽게 느껴진 적이 없는 것 같다.
무라카미라면 상당히 유명한 작가로 알고 있는데, 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든다.
물론 막상 키보드를 앞에 두면 백지상태의 생각으로 빠지겠지만 말이다.
독후감을 쓰면서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나, 의식하는 듯한 표현이 많았었는데,
그것들을 완전히 배재할 수는 없겠지만, 좀 더 솔직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에 있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남에게 표현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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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곳에 있던 죽음의 감촉은 아직도 내 속에 선명함을 동반한 채 남아 있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그 작은 비행기 안에서 본 풍경이 머릿속에 되살아난다. 아니, 실제로 그때 나의 일부는 죽어 버렸다고조차 생각한다.
맑은 로도스 섬 상공에서, 아주 조용히.
말의, 특히 귀로 들리는 음악적인 말의 모든 의미와 관계성이, 큰 형광등으로 비춰질 때처럼, 구석구석까지 깨끗해져 버리면, 그것은 그것대로 뭔가 싱겁지 않을까. 인생에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뭘 그렇게 화를 냈는가 하면, '우리(비틀스) 네 명은 지금까지 대체로 어떤 여자든 모두가 돌리며 공유해 왔다.
그런데 그 녀석들 세 명은 요코에게만은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았다. 그건 심한 굴욕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지금 몹시 화가 나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그런 60년대적인 경위가 있었던가.
세상에는 별의 별일로 다 화를 내는 사람이 있군. 그러나 다른 모두가 요코씨에게 손을 대지 않은 마음도 뭔지 모르게 나는 알 것 같기도 하다.
나도 꽤 이상하지만, 중고 레코드 가게 주인들도 만만찮게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스톡홀름의 한 레코드 가게 아저씨는 대머리에 약간 고집스럽게 생긴 얼굴로, 처음 보았을 때는 몹시 무뚝뚝했다.
그러나 사흘 내리 다니자(그만큼 많은 레코드가 있었다) 과연 감탄했는지, '어이, 좀더 좋은 거 보여 줄까?' 하고 말을 꺼냈다. 내가 '물론 보고 싶지' 라고 하자, 안쪽의 창고 같은 방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곳에도 밖의 진역품과 비슷할 만큼 많은 양의 레코드가 있었다(웃음). 그곳에는 간이 침대와 커피를 끓일 수 있을 정도의
싱크대도 붙어 있었다. 아마도 그곳에서 혼자 먹고 자고 하면서 밤낮없이 레코드를 정리하고 음반 질을 확인하고
가격을 매기는 것 같았다. 그런 정리 과정 이전의 레코드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도대체 이 아저씨는 어떤 인생을 보냈을까 생각하니 심란해졌지만, 나도 그다지 타인에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말할 처지가
아니어서, 그저 하룻동안만 그 창고에서 맘 편하게 레코드를 뒤졌다. 즐거웠다.
생각해 보면 여기저기 관광을 하는 것보다는 중고 레코드 가게의 창고에서 하루를 보내는 편이 더욱더
'여행을 했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세상은 무대다'라고 셰익스피어는 간파했지만,
'세상은 또 중고 레코드 가게이기도 하다'라고 무라카미는 단언하고 싶다.
인생에는 감동도 수없이 많지만, 부끄러운 일도 그만큼 많다. 그러나 인생에 감동만 있다면, 분명 피곤하겠지.
그 옛날, 배팅의 비결에 대한 질문을 받은 어떤 야구 선수가 '한마디로 말이죠, 날아온 공을 힘껏 때리면 되는 겁니다'
하고 진지하게 대답한 일이 있었지만, 그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마음을 나는 알 것도 같다.
그의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지만. 이 사람은 현역에서 물러난 뒤에 야구팀의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역시 세상에는 가르치는 데 서툰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이유로 귀중한 연료를 모아 두기 위해서라도 젊을 때 열심히 연애를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돈도 소중하고 일도 소중하지만, 진심으로 별을 바라보고나 기타 소리에 미친 듯이 끌려들거나 하는 시기란
인생에서 극히 잠깐밖에 없으며, 그것은 아주 좋은 것이다. 방심해서 가스 끄는 것을 잊거나,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일도 가끔이야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넌 위선자야'라는 비판에,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난 위선자가 아닙니다!' 라고
가슴을 펴고 반론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적어도 나라면 그런 반론을 할 수 없다.
'듣고 보니 내 속에는 위선적인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하고 생각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상당한 확신을 갖고 생각하지만,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사람을 깊이 다치게 할까. 그것은 잘못된 칭찬을 받는 것이리라.
그런 칭찬을 받아 잘못되어 간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다. 인간이란 타인에게 칭찬을 받으면, 거기에 맞추려고 무리를 하는 법,
그래서 본래의 자신을 잃어 버린 케이스가 적지 않다.
그래서 당신도 누군가에게 이유 없는 (혹은 이유 있는) 험담을 듣고 상처를 입더라도
'아, 잘됐어. 칭찬받지 않아서 기쁜걸. 하하' 라고 생각하도록 해 보라. 하긴, 그런 생각 좀처럼 하기 힘들지만. 으흠.
어떤 사람에게는 옳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옳지 않은 것도 있고,
어떤 때는 옳은 것이 다른 때는 옳지 않은 것이 있기도 하지요.
글쓴시간 : 03/04/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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