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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Hobby/책. Book & Writing

[여보 나좀 도와줘]인간 노무현... 바로 이웃집 아저씨같은 느낌...

by 202020 2009.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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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름 : 여보 나좀 도와줘
지은이 : 노무현
출판사 : 새터

지금은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된 노무현...
몇년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우연히 시사잡지에 표지 사진으로 나온 노무현 대통령을 보았다.
물론 그 때는 대통령이 아니였고, 그 잡지에는 '왜, 노무현은 아닌가...'라는 식의 노무현 죽이기의 내용들이 들어있었다.
그 글들을 읽으면서 '왜 이 사람은 이렇게 밖에 못하는가... 청문회스타는 그저 남들에게 보이기위한 쇼였었나...'
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 뒤로(아니, 그 전부터인가?) 언론과 맞서 싸우는 것을 지켜보며,
법원에서 언론을 상대로 승소판결을 얻어낸 것을 보며, 또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16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았고, 그의 인생 또한 훗날 반드시 영화나 드라마 소재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

사람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 나는 제대로 살고 있지 않으면서 남들은 제대로 살아야만 한다고
박박 소리치는 모습은 또한 나의 모습이다. 더구나 그 상대가 정치인이라면 소리를 제곱으로 질러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도 사람이고 내가 될 수 있는 것... 아무리 정치를 잘해도 욕은 먹기 마련이고...
역사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는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한 인간으로서 고민과 방황을 솔직하게 써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하는 솔직함, 그것이 노무현의 가장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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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개업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아주머니 한 분이 남편이 사기 혐의로 구속되었다며 내게 변호를 의뢰해 왔다.
나는 그 사건을 60만원에 수임했는데, 사실 당사자간에 합의만 되면 별도로 필요없는 사건이었다.
당연히 변호사로선 사건을 맡기 전에 먼저 합의를 해보라고 권유했어야만 옳았다.
그러나 마침 변호사 사무실에 돈이 딱 떨어져 곤란을 겪고 있었던 때라 그 아주머니가 나타나자 사건을
덜렁 맡아 버렸던 것이다. 사건을 맡자마자 사무장은 나더러 얼른 피의자인 그 아주머니의 남편을 접견부터 하라고 재촉했다.
그건 사무장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당연한 상식이었다. 피의자를 접견도 하기 전에 합의를 봐 버리면,
그 아주머니가 변호사 선임을 취소하고 해약을 요구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접견을 하면
계약금을 반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서둘러 접견을 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접견한 다음 날 그 아주머니가 찾아와 합의를 봤다면 해약을 요구했다.
난 일단 사건에 착수하면 수임료의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는 변호사 수임 약정서를 보여주면서 돈을 못 돌려준다고 버텼다.
속으로는 미안하고 얼굴도 화끈거렸지만, 당시 사정이 급해 받은 돈을 이미 써 버린 후였다.
그 아주머니는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다.
'변호사는 볼래 그렇게 해서 먹고삽니까' 하는 그 말 한 마디를 내 가슴 속에 던져 놓고는.
나는 지금부터 시작하려 하는 이야기를 그 누구보다도 지금쯤은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을 그 아주머니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온 내 삶의 영욕과 진실을 담보로 하여 따뜻한 용서를 받고 싶다.

국민학교 시절 기억에 남는 일의 대부분은 가난과 열등감, 그로인한 반항적 태도, 이런 것이었다.
그러나 자존심과 우월감도 그에 못지 않게 강했다. 우월감과 반항심이 뒤섞여 가끔 엉뚱한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작업 중 큰 목재에 얼굴을 얻어맞아 이빨이 부러지고 입술이 찢어져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입술을 꿰매고 정신을 차려보니 친구가 그 날 신문을 보여주었다. 예비 시험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올라 있었던 것이다.
막노동 중에 몸을 다쳐 병원에 누워 있던 거지꼴 같은 내 신세...
그때의 발표 명단은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그 누구도 당시의 내 심정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불안하고 힘든, 그리고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보낸 끝에 나는 사법고시에 합격을 했다.
합격의 감격은 대단한 것이어서 친구가 소식을 전해 주자, 아침부터 한바탕 싸우고 토라져 누워있던 아내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는 엉엉 울어댔다. 들뜬 기분은 제법 오래 갔다.
길을 가면서도 '저, 고시에 합격했습니다.'하고 소리치고 싶었고,
차를 타도 옆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자랑하고 싶을 정도였다.

해마다 대학 입학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을 때면 신문 방송마다 법대나 의대 수석 합격자의 소감과 포부가 기사화되곤 한다.
대개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돕겠다,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인술을 펼치겠다는 등의
얘기가 나오곤 한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자꾸만 연수원 시절이 떠올려진다.
그때의 그 포부나 각오를 그대로 실천하려면 얼마나 많은 자기의 것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그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건강 - 절대적 조건임은 두말할 것 없고 다만 공부로 오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보다 초조, 불안 등의 심리적 파탄에서 오는
손실이 훨씬 더 심각하고 장기적인 것이다. '고시 아니면 파멸'이라는 생각이나 출세에의 지나친 집착,
'최단기''수석합격'등의 욕심은 사람을 견딜 수 없이 초조하게 만들었다. ... 여하튼 나는 이런 느슨한 자세로 공부했다.
그러나 결코 남보다 노력을 덜하지는 않았다. 보통 10시간은 넘게 공부했고 일단 책상에 앉으면 무서운 집중력을 구사했다.
머리가 혼란해지고 잡념이 생길때에는 책을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안정이 되었다.
그러나 일단 책을 떠나면 고시는 깨끗이 잊었다. 이런 느슨하면서도 투철한 자세는 확고한 직업관에서 왔다고 생각되지만,
또 합격에의 신념으로 보완될 때 더욱 안정적이라 생각된다.


글쓴시간 : 03/05/28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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