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부의 산업정책이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버릇이 있다. 산업정책이란 게 뭔가.
정부가 특정한 산업을 골라 정책적으로 밀어준다는 것이다. 1960~70년대 압축성장의 시대를 풍미하던 정책이다.
개발연대식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세계화와 개방화의 시대적 조류가 전략산업에 대한 과도한 보호나 지원을
어렵게 만들었거니와, 국내적으로도 정부가 몇몇 산업을 골라 지원하는 정책을 쓸 수 없게 됐다.
과거 산업정책에서 연상되는 정경유착이라는 구시대적 행태를 국민이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뿐더러
지원할 산업을 공무원들이 책상에 앉아서 골라낼 재간도 없어졌다. 산업정책은 ‘개발연대의 추억’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 추억을 되살리는 일이 일어났다. 바로 이달 초 정부가 발표한 ‘전기자동차산업 활성화 방안’이다.
내용인 즉, 당초 2013년으로 잡혀 있던 전기차의 상용화 시기를 2011년으로 앞당기기 위해 정부가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에도 정부가 산업정책에서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아니었다. 미래 성장동력 육성이니,
신수종산업 발굴이니 하는 정책 발표가 끊이지 않았고, 최근엔 녹색산업이 새롭게 등장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은
대개 민간 쪽의 사업계획을 한데 모으거나 부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지, 대놓고 특정산업을 키우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기차산업을 노골적으로 밀어주겠다니 놀랄 수밖에.
그러나 나는 전기차에 관한 한 정부 주도의 육성정책에 대한 색안경을 벗기로 했다. 아예 정부가 더 화끈하게 밀어주기를
바란다(참고로 필자는 전기차업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밝혀둔다). 전기차야말로 한국경제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성장동력원이지만 제대로 성장하기엔 시간이 촉박하다는 생각에서다.
전기차는 조만간 시장이 급속하게 확대될 가능성이 큰 데다, 우리나라만큼 개발과 생산에 최적의 여건을 갖추고 있는
나라가 드물다. 친환경 그린카에 대한 관심이 커짐에 따라 전기차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커지게 돼 있다.
이에 따라 벌써부터 치열한 전기차 개발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선보인 신차 가운데
30%가 전기차였다. 일본의 미쓰비시자동차는 이미 순수 전기차를 상용화했고, 도요타도 전기 경차를 출시했다.
미국의 빅3 자동차사와 중국의 BYD도 각각 내년과 내후년에 전기차를 상용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각사의 본격적인 전기차
출시 시점은 모두 2011년에 맞춰져 있다. 2011년은 세계 전기차시장의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결전의 해가 될 전망이다.
전기차에 가장 큰 공력을 들이는 르노·닛산은 모터쇼에 아예 조만간 출시할 상용 전기차 모델만을 내놓는다.
카를로스 곤 회장은 무려 40억 유로(약 59억 달러)와 2000명의 엔지니어를 투입할 정도로 전기차 개발에 사운을 걸었다.
이 르노·닛산이 글로벌 전기차의 생산거점으로 한국의 르노삼성을 지목했다는 소식이다. 전기차의 핵심기술인 배터리와
정보기술(IT) 분야에서 한국이 세계적인 강점을 가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다. 한국이 전기차로 승부를 걸겠다는 구상과
똑같은 이유다.
문제는 누가 먼저 더 나은 성능과 가격경쟁력을 갖추느냐다. 승패의 관건은 확실한 내수기반을 만드는 일이다.
여기가 바로 정부가 나설 대목이다. 각국 정부가 전기차 개발과 보급에 경쟁적으로 세금을 깎아주고 보조금을 지원하는
이유다. 이미 미국·일본·중국·프랑스는 물론 이스라엘과 덴마크 정부까지 각종 명목의 지원책을 내놨다.
전기차 시장의 선점 경쟁이 바야흐로 정부 간 지원경쟁으로 비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라고 해서 뒷짐을 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 아예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다만 과거 산업정책과는 달리
전기차산업 육성의 열매가 특정 기업만이 아니라 국내 소비자와 국내 산업 전반에 골고루 퍼질 수 있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물론이다.
김종수 논설위원
김종수 기자 [jongskim@joongang.co.kr]
2009.10.21 19:33 입력 / 2009.10.22 15:27 수정
(원문보기)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836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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